좋은 곳으로 데려가주세요

코스는 전적으로 택시기사님께 맡겼다. 보고싶은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기사님은 만달레이힐로 차를 몰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달린 차는 에스컬레이터 건물 앞에 멈췄다. 올라갈때는 편히 올라가라는 얘기였다. 에스컬레이터라니 좀 이상하군, 어정쩡한 자세로 두리번거리며 정상에 도착하니 수짜웅파예 파고다가 눈에 들어왔다.

한바퀴 돌며 풍광을 살피니, 해발 236m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근사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곳을 꼭 들르라고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공양을 하는 것이겠지, 왁자지껄 웃으며 그릇을 닦는 가족들과 눈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내려올때는 계단길을 골랐다. 상점들과 작은 사원이 있었지만 딱히 구경거리는 없었다. 다들 낮잠을 자러 갔는지 상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기사님을 만나 짜욱도지 파고다로 향했다.

입구가 작아 사원의 규모도 작을 줄 알았지만, 안쪽으로 깊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원 분위기는 제법 소박했는데, 미얀마에 와서 본 사원 중 가장 대중적인 곳 같았다.

천천히 부처를 찾아 물을 부으며 한바퀴 돌다보니 뒷뜰에 거울이 잔뜩 달린 정체불명의 시설이 있었다. 이게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한 젊은이가 다가왔다.

거 타나카에요. 헐? 타나카가 나무였네. 놀라는 표정을 보더니 젊은이는 이렇게 하는거에요, 나무에 물을 뿌리고 슥슥 문질러서 얼굴에 바를 수 있는 크림을 만들어줬다. 호오, 고맙습니다. 젊은이는 생긋 웃더니 자기 얼굴에도 타나카를 잔뜩 발랐다. 나중에 보니 타나카를 바를 수 있는 시설은 남성용과 여성용이 구분되어 있었다. 멀리 여성용 시설에는 앳된 얼굴의 아가씨들이 열심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타나카도 발랐겠다, 현지인이 된 기분으로 경내를 거닐었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부처와 장식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다닐때면 할머니께 드릴 부처를 모셔오곤 했었다. 이곳 저곳에서 모셔온 부처가 제법 많았는데, 미얀마에서도 부처상을 눈여겨보곤 했었다. 양곤과 바간에서는 딱히 맘에드는 걸 찾지 못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본관 끝자락에서 근사한 조각으로 가득한 공방을 찾아냈다.

젊은 주인의 친절한 설명 덕에 향나무와 타나카, 마호가니를 구분할 수 있게 됐고 용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몇몇 조각들은 정말 너무 근사해서, 와, 이걸 가져갈 수만 있다면 돈은 문제가 안되겠다 싶은 것들도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쨌든 망가뜨리지 않고 무사히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것으로 부탁했다. 젊은 주인은 꼼꼼한 손길로 포장해서 건네주며 말했다. 할머니께 좋은 선물이 될거에요. 기분이 좋아졌다.

사원을 나와 차를 타고 만달레이 로열 팰리스로 향했다.

이름은 황궁이지만 오랫동안 군부대 주둔지였단다. 식민 시절 영국군이 주둔했고, 현재는 미얀마 군부대가 지키고 있다.

입구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여권을 맡기고 있었다. 좀 귀찮다 싶었는데 기사님이 손을 흔들자 그냥 통과가 됐다. 가이드투어는 이런게 편하군.

성은 꽤나 큰 규모였지만 군대가 주둔하다보니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한가운데의 목조건물들은 일본(그럼 그렇지!)이 태워버려서 최근 복구하고 있다는데, 신기하게도 우리 경복궁과 느낌이 비슷했다. 아마도 칠의 색깔과 처마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샨족의 얼굴을 봐도 그렇고 몇몇 미얀마인들은 우리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미얀마와 우리는 뿌리가 어딘가로 이어진데가 있나 생각도 들었다.

목조건물들 사이에서 박물관을 찾아냈다. 잠깐 들어가봤는데, 역시 어딘가 연결된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금관을 장식한 솜씨는 신라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박물관을 나오니 넓은 길이 이어졌다.

이쪽 건물들은 오래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더니, 황궁 한가운데의 목조건물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황궁 전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택시로 돌아가니, 낮잠을 주무시던 기사님은 쉐난도 사원으로 가야한다며 서두르셨다.

기사님은 나름대로 투철한 직업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쉐난도 사원으로 가기 전 만달레이힐의 정문으로 안내하더니 거대한 사자상을 찍으라고 촬영 포인트를 알려주셨다. 좁은 계단에 올라가 셔터를 몇 번 누르니 밑에서 기다리던 기사님은 엄지를 세우고는 빨리 다음 장소로 가자고 했다. 하하.

쉐난도 사원은 수많은 부조와 정교한 조각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목조건물이었다. 미얀마의 사원들은 보통 웅장하고 거대했는데, 이 사원은 작고 예뻤다. 조각기술도 캄보디아의 반띠아이스레이에 비견할만큼 대단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감탄이 나왔다.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네 방향의 나가상도 대단했다.

조금씩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준비한 코스를 어떻게든 완주하고 싶으신지, 꾸도더 파고다로 길을 재촉하셨다.

총 729개의 비문에 트리피카다를 새기고, 그 비문들을 하얀색 파고다들이 감싸고 있는 공간은, 마치 거대한 묘지처럼 보였다. 파고다 사이를 숙연한 마음으로 걷다 보니, 기대어 앉아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비문들을 다 읽으려면 500일 쯤 걸린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꾸도더를 나와서도 몇 군데인가의 파고다를 돌아봤다. 이건 아무래도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달레이 역시 수많은 사원과 유적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데이투어가 끝났다.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터라 기사님에게 맛있는 미얀마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기사님은 그 정도야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터프하게 차를 몰았는데 도착해보니 식당 이름이 밍갈라바였다. 우리말로는 앙녕하세요? 정도겠다.

가게 안에는 트립어드바이저 1위를 달성했다는 상패가 붙어있었다. 헐, 너무 대놓고 외국인 취급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됐는데, 왠걸 볶음국수와 찻잎샐러드가 정말 맛있었다. 결국 맥주를 두병이나 마시고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취기가 올라 기분 좋은 상태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식사가 끝날때까지 기다려주신 기사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터미널 안을 어슬렁거리다 한참 후에야 버스에 올랐다.

여행의 마지막, 다시 양곤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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