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슬란드 1번 국도의 별명은 링로드 Ring Road다.
1940년대에 시작돼 1974년 완공된 이 도로는 왕복 2차선의 좁고 위험한 길이지만,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첫번째 목표가 되곤 한다. 주요 거점 도시와 관광 포인트를 잇고, 길 위를 달리는 것만으로 아이슬란드의 ‘진짜’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는 길 역시 링로드 위에 있다.
총길이가 1,285km에 달하다보니 한 바퀴 도는데 일주일 이상이 필요하다. 열흘 정도면 적당하단다. 그런데, 비행편의 출도착 스케줄에 맞추고, 그 와중에 항공사의 스케줄 변경까지 겹쳐 이 코스를 5일 만에 돌게 됐다. 어떻게든 가보자!를 외치며 강행한 덕에 하루의 시작이 늘 새벽이었다.

아이슬란드 전역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준 도요타 하이럭스다. 어른 다섯명과 열가지가 넘는 짐을 싣고 산으로, 바다로, 오프로드로 달려줬다. 픽업을 운전하는건 처음이었는데, 평소 모는 도요타 차량들과 운전감각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신호대기 중 한 컷. 동구권의 아파트를 연상케하는 건물을 보고 좀 칙칙하네 생각했는데, 날씨 탓이었다. 레이캬비크 Reykjavík로 돌아왔을 때 이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이유도.

도심을 벗어나 링로드에 오르자마자 길게 이어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먼 곳까지 이어지는 길을 보는데, 상상했던 규모가 아니었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긴 한숨을 쉬며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멈춰서야 할 풍경을 만나, 길가에 멈췄다.

이렇게 큰 하늘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쿠시로 습원의 큰 하늘이 잠깐 생각났지만, 애초에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다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행의 풍경.

차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하이포스 Háifoss. 아이슬란드에서 만나는 첫 폭포다. 링로드에서 벗어나 오프로드를 한참 달리니 표지판이 나타났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오프로드를 가려면 규격에 맞는 사륜구동 차량을 몰아야 하는데, 꽤 엄격하게 규제한다. 오버아닌가 싶었는데, 오프로드에 들어가보니 어정쩡한 차로는 큰일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평범한 흙길로 보이지만 펑크나기 딱 좋게 생겼다. 사방에 구덩이고 온통 꺼진 땅이다. 각진 돌들이 굴러다니고 웅덩이가 깊다. 새삼 전세계의 타이어회사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이런데를 달리는데 타이어가 버틴다고? 랄까.


하이포스에 도착했다. 폭포까지는 걸어야 해서 앞선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멀어지는 거다. 뭔 걸음이 그리 빠른지. 그나저나, 폭포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아무래도 축적이 다른걸까.

드디어 하이포스를 만났다.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폭포라는건 본래 인 거구나. 그저 멍하니 쳐다보며 소리에 빠져들었다.

절벽 맞은편으로 일행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게 보였다. 저기서도 내가 저만하게 보일텐데.

폭포 아래로 물길을 좇으니, 깊은 계곡을 이루며 흘러간다.
아이슬란드의 강들은 빙하로부터 시작된다. 산 꼭대기의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이 도랑을 만들고, 폭포를 만들고, 계곡을 만들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빙하수가 만든 폭포가 수 천개, 아이슬란드 어디를 가도 보인다. 하이포스와 같은 폭포가 몇 개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이포스를 떠나 다시 길로 들어섰다. 멀리 산자락이 보이는데, 저기까지 어느 정도 거리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꾸 눈길을 뺏기다보니 운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정신 차리자.

두번째 목적지는 란드만날라우가르 Landmannalaugar다.
흔히 하이랜드 Highland라고 하면 스코틀랜드 북부를 떠올리지만, 이 말은 광활한 고지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아이슬란드의 하이랜드는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다. 형형색색의 바위산과 암석지대가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흡사 화성 표면 같아서 영화의 단골 촬영지다. ‘인터스텔라’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이 아닌 ‘이행성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다시 오프로드로 들어서 란드만날라우가르를 향해 달렸다. 종종 강이 범람해 끊어진다는 길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운이 좋았다. 전날 비로 강이 범람해 길이 잠기기 시작했는데, 하이럭스의 높은 차고 덕분에 지날 수 있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바퀴가 진창에 빠지거나 수심 깊은 곳으로 들어갈까봐 바짝 긴장하며 차를 몰았다. 마른 땅으로 나온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낯선 행성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길. 온통 처음 보는 검은 흙이었다.

검은 흙 위로 앞선 차들의 바퀴자국이 길처럼 남아있었다.
길은 언덕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