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인천으로 향했다. 오늘은 제물포 일대를 돌아다니는 날이다.
송림동은 처음이었는데 골목이 심상치 않았다.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이 어마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곳이었다.

이제는 대부분 문을 닫은 가게들 간판이 대단하다. 어떤 분위기였을지 알 수 밖에 없겠다.

그 시절 심었을 이 나무는 본래 어떤 이름이었을까. 기억은 다양한 형태로 재현된다.



영업시간부터 만만치 않다. 새벽 다섯시부터 해장국을 팔고, 11시부터는 점심 장사로 설렁탕을 판다. 이런 집이 맛이 없을 수 있을까. 해장국은 기본적으로 맑게 끓인 양곰탕에 배추를 더한 것이다. 밥을 말아주는데 토렴 방식이 아니라, 넣고 끓인 뒤 식혀서 내주는 방식이다. 토렴한 것보다 밥알이 더 부드럽다. 두말해 무엇할까, 근처에 있다면 매일이라도 가겠다.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걸 밥을 다 먹고야 알았다. 메뉴 어디에도 술을 판다는 애기가 안써있었다. 드시는 분도 없고. 선미후주다. 편의점에 들러 힙 플라스크 모양의 소주를 샀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만석부두에서 내리니 이불 빨래가 반겨준다.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버린 골목이지만, 풍경은 계속된다.




낡은 창고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얼얼 짖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 틈새를 보니 짖던 녀석이 흠칫 놀란다. 들이대라는 것 아니었거든? 하는 표정이다. 인사하고 돌아서자 뒤에서 짖는 소리가 커진다. 목소리 큰 놈 치고 겂 없는 놈 없다는 말이 사실이겠다.


뻑뻑하게 붙은 광고전단 앞으로 철망이 쳐지고 잡초가 무성하다. 이 또한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이겠다.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덧칠하지 않는 벽이다.

기울어진 벽과 나무, 그리고 그림자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폐선들이 나타났다. 만석부두는 굴뚝이 있고 연기가 오르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되짚어보니 그곳은 북성포구였다. 가깝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다.

조금 더 지나쳐오니 포박당한 중국배들이 보인다. 나포된 것들일까.



맞은편으로 선박 작업장이 있었다. 여쭤보니 해체를 기다리는 배들이란다. 아프리카 서부해안에는 배의 무덤이 있는데, 커다란 배를 가져다두면 원주민들이 수작업으로 배를 해체한다던 얘기가 생각났다. 거대한 고래뼈처럼 보이던 사진들도 떠올랐다.


길을 따라 부두의 끝까지 걸었다. 뭍에 올라온 배들과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아파트는 어디에 갖다 둬도 흉물스럽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아까와는 다른 이불이 걸려있었다. 그새 다 마른걸까.

제물포개항장에 도착했다. 일본의 하코다테, 나가사키처럼 개항지의 창고군을 개조한 공간이다. 다만, 가스등이 없어 무드가 좀 더 현대적이다.

노란 대문과 나무그림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일제시대의 건물이 많다.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특색있는 거리다.

언젠가 들어가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언덕을 오르니 오래된 건물들이 보인다. 어릴적 본 ‘양옥집’이라는건 사실 일본풍 건물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방치된 모습이 흉물스러울지 모르지만, 낡은 것은 아름답다.






인천시민애집과 제물포구락부도 잠시 들렀다. 김상유의 동판화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작 사진만 실컷 들여다봤다.


차이나타운으로 내려왔다. 샤오롱바오와 벤뎅이를 맛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신포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굿바이 제물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