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는데, 붓싼 출장은 처음이다. 부산을 출장지로 가려니 어쩐지 설레는 마음이 되었다.

영진돼지국밥을 좋아하지만, 출장길과 동선이 맞지 않는다. 부산에 내려 혹시나 싶어 본전을 가보니, 왠일로 줄선 사람이 별로 없다. 고작 30분 만에 자리에 앉았으니, 이쯤 되면 기적이다.

본전의 수백은 처음인데, 별도 접시로 나오고, 국에는 고기가 없는게 특이하다. 토렴도 하지 않은걸 보니, 완벽한 외지인용 국밥집이 되려는건가 싶었다. 잠깐 고민하다 그냥 다 국에 말아서 한 그릇을 만들었다. 그래도 본전의 맛은 여전하다. 깔끔한 맛을 선호한다면 확실히 이쪽이 맞겠다.

일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좀 걸어볼까, 차이나타운을 지나 중앙동, 남포동, 그리고 영도로 방향을 잡았다.

중앙동 뒷길도 정말 오랜만이다. 여전히 개발이 진행 중인 공간들과 관광지화 된 곳이 공존한다. 40계단을 보러 갔다.

문화센터가 생겼는데, 딱히 볼 것은 없었다. 위쪽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봤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은 ‘놀러오는 자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낡은 것이 아름다운건 어쩔 수 없겠다. 안개비처럼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서 만신의 옷이 걸린 세탁소를 발견했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지만, 센텀 쪽을 제외하면 낡은 풍경이 더 많은 곳이 부산이다. 옷집은 여전히 영업중인 것 같았다.

영도에서 본 영도대교는 어릴적 봤던 모습과 좀 다른 것 같은데 (분명히 다를텐데) 기억이 희미하니 알 길이 없다.

다리 아래의 조각을 보며, 무엇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적어도 놀이공원은 아닐텐데.

깡깡이마을은 어지간히 변하지 않는다. 아니, 무척 많이 변했을텐데, 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영업중인 낡은 공간들과 젊은이들이 입주한 카페가 섞여있다. 어떻게든 공간이 보존되고 있다는데 감사할 따름이겠다.

모모스로 방향을 잡았다. 길게 늘어선 풍경이 맘에 들어, 최근에도 몇 번이고 와보는 중이다.

지인과 커피를 마시기로 해서 모모스는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원두라도 좀살까 하다가, 아무래도 손이 귀찮을 것 같아 포기했다.

약속까지 시간이 있어 뭘 할까 고민하다가 ‘집밥’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집이라, 문득 영선동이 생각나 발길을 옮겼다. 어릴적 지내던 곳인데, 안방에서 문을 열면 바로 길이던 집에 살았다. 지난 번 영도에 왔을 때 가볼까 생각했는데, 또 잊고 있었다.

40년하고도 몇 해가 더 지났다. 집이 있던 자리에 상가가 들어섰다. 기억속의 낡은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역시 술이라도 마실까 싶어졌다.

다시 영도대교를 건너는데 빗줄기가 거세졌다. 부산역 앞에 두고 온, 잃어버린 우산이 생각났다.

건어물 거리를 지났다. 적산가옥 1층에 자리잡은 상점들이 묘한 풍경을 만들어내던 곳인데, 어느새 그 풍경들은 사라지거나 망가져버렸다. 뭔가 남겨두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길을 따라가다보니, 신시장이 들어선 오른쪽으로 또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설마 꼼장어 골목도 없어진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싸고 불결하다고 외면받지만, 꼼장어는 이 골목에서 먹어야한다.

다행히도 공사판 뒷편으로 몇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다 없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아직 안없어졌재. 여쭤보니 새 건물이 완공되는 내년 가을이면 이주하게 될 거라신다. 뭔가 남겨두는건 역시 어려운 일일까. 얼마 안남은 이쪽 골목까지 없어지면, 자갈치는 명실상부한 관광시장이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오래된 수산시장도, 우리가 꼼장어를 먹을 곳도 없어질 것이다.

혼자 온 사내가 안쓰러우셨는지 꼼장어를 여섯 마리나 썰어주셨다. 다 먹겠는가? 그럼요, 다 먹어야죠.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웃어주신다.

이 의자, 꼼장어만큼이나 그립겠다. 값을 치르는데 조금 더 얹어드렸더니, 가게 앞까지 나와 손을 잡으셨다. 옮기기 전에 한번 더 오소. 옮기면 연탄불은 없을거니. 알겠습니다, 그 전에 꼭 올게요. 돌아서는데 어쩐지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골목을 오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온 길을 되짚어 남포동으로, 중앙동으로, 차이나타운으로 걸었다.

남아있는 것만으로 고맙게 될 노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인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갔다. 저쪽인가, 지하철역을 찾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알려줬다.

녀석, 잘 지내라.

숙소에 도착하니, 하루 종일 가시지 않던 허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국수라도 먹을까, 숙소 앞 가게에 들렀다.

그다지 든 것도 없는 충무김밥과 국수인데, 맛있게 먹었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영업을 하시길래, 아침에 몇시에 여시냐고 여쭤봤다가 하루 종일 하재, 혼나기만 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일만 하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떠나는 날의 하늘은 보통 파랗다. 서늘하게 내린 그림자를 보며 부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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