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가이드 투어를 한 적이 거의 없다. 혼자 공부하고, 편견 없이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을 거다. 가이드 투어는 남의 눈으로 여행을 다니는 기분일 것 같았다.

튀르키예는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여행지였다. 여행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우연히 ‘한국어 천재’가 하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덜컥 예약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국가 공인 튀르키예 가이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아주 훌륭했다.

그렇게 보낸 하루의 기록이다.

미팅 장소로 가기 위해 도착한 베야지드 Beyazit역의 일출.

아야 소피아 Ayasofya-i Kebir Cami-i Şerifi의 아침.

갈라타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를 지난 트램은 카바타쉬 Kabataş역에 내려줬다. 그러고보니 1번 트램은 정말 많이도 탔다.

가이드 엘베다씨를 만나, 오늘의 첫 방문지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çe Sarayı으로 향했다. 이 건물은,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1814년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 압둘마지드 1세가 1856년에 재건했다. 1843년에 착공해서 1859년에 완공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 유럽에서 보낸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후기 술탄 6명이 일부 사용했다.

나무위키

가이드 엘베다씨의 설명으로는, 1차대전 패전 후 막대한 빚을 진 상태로 짓다보니 조악한 인테리어가 눈에 거슬리고, 마지막 술탄이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해버리는 바람에 술탄 대가 끊긴 곳이란다. 아주 욕을 욕을 하면서 알려주는데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뺐다.

베르사유를 카피했다는 궁전은 화려하기보다 아담하고 예뻤다. 맑은 날이었다면 좀 더 근사했을 거다.

궁전 안쪽은 대부분 촬영금지라 눈에 넣어왔다.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난 문 앞에서 잠시 바람을 느꼈다.

오늘의 튀르키예 고양이들과도 인사하고.

인상적인 장면이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터번에 관한 것이다. 머리 위에 쓴 하얀 터번이 사실은 수의 壽衣란다.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의미로 머리에 이고 다녔다는데, 마지막 술탄들 중 다섯은 터번 조차 쓰지 않았단다.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고, 비겁한 자들이라고 엘베다씨가 또 욕을 욕을 했다. 듣다보니 우리 현대사의 인물 하나가 떠올랐다. 한강대교를 끊고 도망간 자. 형제의 나라라 그런가, 남 얘기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 화가를 초청해서 그린 천장인데, 평면인데 돔처럼 보였다. 얘기를 들었는데도 보기에는도저히 평면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척 신기했는데, 한편으로는 역시 돈이 없었나, 그림으로 떼웠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투어에서는 하렘 관람이 빠져있었는데, 티켓을 가지고 일주일 내로 오면 하렘만 추가 관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튀르키예의 입장권들은 전반적으로 비싼데, 이런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구시가로 향했다.

구시가에서의 첫 일정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t Camii였다. 1616년 세워진 이 모스크는 벽면의 파란 타일 덕분에 블루모스크로 더 많이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고 불린다는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나마 안쪽은 출입을 막아 평화롭지만, 관람객들이 있는 곳은 만원지하철 수준이다.

돔 문양은 소박하면서도 다른 모스크에 비해 화려한 편이었다. 예의 타조알도 보였는데, 타조알과 비슷한 모양의 등을 같이 배치해둔게 재미있었다.

얼마 못견디고 탈출하다가, 모스크 마당에 평화롭게 잠든 댕댕이를 발견했다. 튀르키예의 댕댕이들은 빵을 먹는다. 개빵뜯어먹는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어이없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밥을 주는거나 저들이 빵을 주는거나 다를게 없다. 어차피 곡물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하든 말든 댕댕이는 잠만 잘 자고 있었다.

블루모스크에서 아야 소피아로 이어지는 광장을 따라 걸었다.

서펜트 칼럼 Yılanlı Sütun을 만났다. 뱀 세 마리가 휘감아 올라가는 모양의 이 기둥은 본래 그리스 아폴론 신전 앞에 있었단다. 기원전(!) 478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4세기 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쪽으로 옮겼는데, 이후 술탄이 머리 하나를, 왜때문에 폴란드 대사가 나머지 두 개를 잘라버렸단다. 그래서 뱀머리 없는 뱀기둥이다.

상형문자가 새겨진 이 기둥은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Theodosius Dikilitaşı다. 기원전 1400년에 세워졌고 역시 콘스탄티누스가 옮겨왔단다. (왠만하면 기원전이고,왠만하면 콘스탄티누스인가?)

세번째는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Örme Dikilitaş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번에는 직접 세웠단다. 본래는 청동 구조물이었는데, 십자군(엘베다씨가 또 게거품을 물었다)이 무기를 만든다고 다 뜯어가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었단다. 그래서 인기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독일인들이 선물했다는 게르만 분수 Alman Çeşmesi도 만났다. 이름은 분수인데 아래 수돗물이 나오는, 뭔가 좀 기묘한 건물이다. 19세기 건축물인데, 묘하게도 이슬람 꽃무늬가 새겨진 것도 그렇고.

오전의 마지막 일정은 술탄 아흐메트 무덤 Sultan I.Ahmed Türbesi이었다. 오스만 제국 황실 가족의 무덤이다.

오스만 제국은 술탄이 되면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야했단다. 특히, 정복자 메흐메트 2세 II. Mehmet는 ‘형제살해법’을 아예 법제화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관까지 만들어야했고, 아흐메트 1세 I. Ahmet가 제위하기까지 150년 간 이 상황이 지속됐다. 터번이 얹어진 것이 황제 및 직계이고, 그 관 아래 땅속에는 시신이 묻혀있단다. 화사한 분위기와는 달리 참혹한 장면이었다.

어지간히 유명한 쾨프테 köfte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1920년 개업이니, 튀르키예의 현대사를 함께 했겠다. 벽에는 온갖 유명인의 사진과 사인이 걸려있어서 밥먹는 내내 구경하기 좋았다. 그건 그렇고, 튀르키예의 케밥은 정말 수십 종에 달하고 서로 달라도 너무 달라서 주문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쾨프테도 어찌 보면 케밥의 하나다.

오후 일정의 시작은 예레바탄 사라이 Yerebatan Sarnıcı였다. 6세기 경 만들어진 로마의 지하 저수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약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지하 공간은 예상보다 더 크고 깊어서 놀라웠다. 과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할만하겠다. (미션 임파서블과 인페르노에 나온다.)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선 공간에서 메두사와 빛이 머물던 시간을 들여다봤다.

다음 일정은 아야 소피아 Ayasofya-i Kebir Cami-i Şerifi *외부*관람이었다. 아야 소피아는,

과거 정교회 성당이자 현 모스크.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으로 건설되어 537년 12월 27일 축성된 성당으로 정교회의 총본산 역할을 하였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군주 메흐메트 2세가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통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아야 소피아에서 금요 예배를 거행한 이래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에는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을 취한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시로 1931년부터 잠시 봉쇄되었고, 1934년 11월 24일 내각의 결정에 따라 1935년 2월 1일 박물관으로서 개방되고 종교의례 거행이 금지되었으며, 회칠에 가려졌던 정교회 성화가 일부 복구되었다. 1985년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2020년 7월 10일 탈세속화 정책을 취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같은 달 24일에 박물관에서 이슬람 모스크로 재전환되었다. 아야 소피아는 당시 세워진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광대한 실내 공간을 가진 건물로, 16세기에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성당이기도 했다. 돔의 직경만 하더라도 31.87m로, 로마의 건축물인 판테온 다음 가는 크기였으며 수백 년 뒤의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피렌체의 두오모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조적 돔이기도 했다. 아야 소피아는 많은 정교회와 이슬람 문화권 종교 건축물들의 기본 구조가 되었으며, 르네상스 건축물의 구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어 명칭인 하기아 소피아·아이아 소피아(Ἁγία Σοφία)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그 외에는 하기아 소피아, 아야 소피아, 성 소피아 사원,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대성당, 성 소피아 박물관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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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스크로 개방되면서 1층에는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단다. 굉장히 비싼 관람료를 내면 2층에 잠깐 올라갈 수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눈물 흘릴 일도 없다는 엘베다씨의 설명이었다. 개방된 공간이 얼마 안되고, 이슬람 교리에 따라 성화, 성상 등은 모두 가려뒀다고. 그래서 *외부*관람을 한다는 얘기였다.

무슬림은 무료인데, 입구에서 일종의 주기도문 같은 것을 외워보게 한다면서 엘베다씨가 따라해보라고 했다. 물론, 즉시 포기했다.

마지막 일정인 톱카프 궁전 Topkapı Sarayı으로 향했다. 이곳은 15세기에 세워진 후, 19세기 돌마바흐체 궁전이 정궁이 되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었다. 명성에도 불구하고 성은 어지간히 소박해보였는데, 이슬람 교리에서 술탄이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건 오만함을 뜻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이곳에 머문 술탄들은, 돌마바흐체에 머물던 ‘머리에 터번도 두르지 않은’ 술탄들과 달리 검소하게 지냈단다. 역사적 배경을 떠나서, 숲이 무척 아름답고 건물들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톱카프 궁전에서는 하렘 Harem-i hümâyûn도 볼 수 있었다. 하렘이라면 무슨 퇴폐적인 장소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유럽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단다. 후궁이지만 교육기관의 역할도 했던 곳으로, 분위기도 퇴폐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참고하는게 좋겠다.

궁전의 뒤편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펼쳐졌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성물들을 보러 갔다. 현재는 이슬람의 영토지만, 그 세월만큼 동로마제국이 번성했던 곳인 증거겠다.

세례요한의 팔이다. 들여다보니 뼈도 남아있었다.

아브라함의 밥그릇이다.

다윗의 칼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그 다윗.

모세의 지팡이다. 홍해를 갈랐던 그 지팡이라는데, 진품이네 아니네 하면서 이스라엘과 티격태격 중이란다. 엘베다씨는 진품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전반부 일정이 끝났다. 내일은 가파도키아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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