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을 전혀 못한 상태인데 어쩐지 제 시간에 일어났다. 아이슬란드와 한국은 9시간, 폴란드와는 7시간의 시차가 난다. 자려고 누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니 힘들 수 밖에 없는 시차다.

해가 비추자 어제밤과는 전혀 다른 숙소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일본의 햇빛은 우리보다 강한 편이다. 미세먼지가 적기 때문일까.

카메라를 챙겨 밥을 먹으러 나섰다. 길가의 풍경이 그야말로 시골마을이다. 학교가 있고, 작은 맨션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풍경이다. 후지의 GFX100RF 구입 후 첫 여행인데, 일본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특히 클래식 크롬이 그렇다.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밥집을 찾는 것도 일이었는데, 조잔케이 관광협회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잘 작동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았다. 한글도 지원한다.

이곳은 철판구이 전문점이라는데 평이 좋은 편이었다. 머리에 두건을 쓴 아저씨가 연기를 피우며 밥을 볶아주려나 싶었는데,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에 가까운 곳이었다.

메인 재료를 선택하면 철판에 구운 신선한 채소와 밥, 덜 짜게 끓인 장국을 내준다. 같이 제공되는 연두부와 무조림, 쯔케모노도 질이 좋다. 시골마을의 적당한 분식집 정도를 기대했는데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층의 카페도 구경갔다. 옛 다방처럼 꾸며진 실내에는 반백의 일본인 아주머니들이 차와 케이크를 즐기고 있었다.

머물고 싶던 창가.

커피를 보고서야 생각났는데, 홋카이도에서는 분말 커피가 일반적이었다. 그렇다고 향취가 부족하지 않고 케잌과는 더욱 잘 어울린다. 잊고 있던 맛이다.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이런 장면을 만나면 잠시 고민하게 된다. 그냥 나뭇잎이 떨어진 걸까, 가게에서 일부러 이렇게 해둔걸까. 왠지 후자일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근사한 명패다. 이집은 아무래도 다시 와봐야겠다.

여우비가 그친 길을 따라 산책을 갔다.

가끔 그리웠다. 일본의 하늘색. 혹은 떠나왔던 그 날이었을까. 늦은 오후 기차로 오타루 小樽에 도착했던 날의 하늘도 이랬다.

조잔케이 시내로 걸어들어갔다.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일까, 낡은 풍경이 아름답다. 이런 풍경 때문에 종종 일본에 오게 된다.

제법 본격적일 것 같은 바의 문 앞을 서성였다. 잠시 머물 시간이 있으려나.

건너편의 조잔케이 신사를 보러 갔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에서 말하듯이, 조잔케이는 딱히 할 일이 있는 곳이 아니다.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데이투어 버스도 4시간 반이면 돌아간다. 시골마을 답게 밤도 이른다.

소박한 신사다. 본전을 잠시 들여다보고 돌아섰다.

조금 더 파래진 하늘. 이래야 일본 하늘색이다.

여전히 여름을 기억하는 길가의 꽃.

하루밖에 시간이 없어서 두 곳의 온천을 가기로 했다. 첫 번째는 유노하나 湯の花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시설과 대욕탕, 여러 테마 온천탕, 그리고 숲을 마주 하는 노천 온천을 갖추고 있다.

꽤 만족스러운 온천을 하다가 신기한 장면을 만났다. 노천에 플라스틱 의자가 여러 개 놓여있는데, 다들 알몸으로 그냥 앉아있는거다. 춥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따라해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풍욕이라는 거였다.) 따뜻한 온천에서의 반신욕은 물론 좋지만, 홋카이도의 바람을 느끼며 앉아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종종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밖에 나오니 어느새 밤이었다. 두 번째 온천 호헤이쿄 豊平峡温泉까지는 2.5km 정도 거리인데, 배차가 멀다보니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차도 없다는 거였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밤길을 걸어 도착한 갈림길.

가게도 문을 닫았는데, 무료했는지 개 한마리가 컹컹 짖으며 나왔다가 돌아들어갔다.

온천에 도착했다. 고작 6시밖에 안됐는데 꽤나 밤 풍경이다.

호헤이쿄는 온천도 유명하지만 밥도 맛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가장 유명한 것은 카레. 온천에서 왠 카레 싶었는데, 주방 안쪽을 보니 인도인으로 보이는 분들이 일을 하고 있다. 본격적이네.

잘 구운 난과 3가지 카레, 그리고 참마와 낫토를 얹은 소바다. 주문받는 분으로부터 정말 먹을 수 있냐는 질문을 두 번 받았었다. 잘 먹어요, 걱정마세요. 카레의 맛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꽤 수준급이다. 호헤이쿄에 방문한다면 먹어볼 만 하겠다.

배도 부르겠다, 촌스럽게 꾸며진 정원을 보며 온천을 하러 갔다.

호헤이쿄는, 명불허전이었다. 자연석 위에 조성된 노천온천에서 홋카이도의 바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눈이 쌓인 날 다시 온다면, 어쩌면 눈물 한방울 흘릴지도 모를 풍경이었다.

온천의 마지막은 종이뚜껑우유여야 하는데, 일본에서조차 종이뚜껑은 사라졌나보다. 9년 전 하코다테 函館에서 마신 우유가 마지막이 되었다. 뭔가 배신감이 느껴졌다. 남겨뒀어야지.

밤길을 되짚어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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